형제
김준태
초등학교 1, 2학년 애들이려나
광주시 연제동 연꽃마을 목욕탕―
키가 큰 여덟살쯤의 형이란 녀석이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여섯 살쯤 아우를
때밀이용 베드 위에 벌러덩 눕혀놓고서
엉덩이, 어깨, 발바닥, 배, 사타구니 구석까지
손을 넣어 마치 그의 어미처럼 닦아주고 있었다
불알 두 쪽도 예쁘게 반짝반짝 닦아주는 것이었다
그게 보기에도 영 좋아 오래도록 바라보던 나는
“형제여! 늙어 죽는 날까지 서로 그렇게 살아라!”
중얼거려주다가 갑자기 눈물방울을 떨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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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의 정이 예전 같지 않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런저런 일로 연결된 이웃들 간의 관계도 끈끈한 맛이 없다. 겉으로야 깍듯이 예의를 차리고 있지만 왠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허리를 구십도로 숙여 인사하는 일본인이나 아무나 붙잡고 뽀뽀를 해대는 미국인들을 보며 느꼈던 호들갑스러움을 이제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보게 되었다. 시의 언술은 가장 담백하고 가장 솔직하고 가장 간명해서 더이상 가식이 없는 진실한 자리에서 출발한다.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차마 입 밖으로 발설할 수 없는 사랑을 가슴 속에서 키우는 방식이다. 대중목욕탕에서 우연히 보게 된 형제 때문에 가슴이 뜨거워져 저도 모르게 눈물을 떨구고 있는 시인은 지금 차마 입 밖으로 발설할 수 없는 사랑에 빠져 있다. 우리는 그 눈물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최영철=시인.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연장론' 당선. 시집 '원북원부산' <금정산을 보냈다>와 <돌돌><찔러본다><일광욕하는 가구> 등 다수. 성장소설 <어중씨 이야기>, 산문집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등. 백석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최계락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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