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별 동길산겨울밤에는 겨울별이 뜨고겨울 낮에는 여름별이 뜬다여름의 밤과 낮은 그 반대다보이지 않을 뿐낮에도 별은 뜬다는 말이다밤에 빛났던 기억을 간직한 별하나쯤은 둘쯤은자신이 납작해지기까지 빛을 짜내어낮에도 보이는 별이 된다겨울의 짧은 낮생각 없이 하늘을 둘러보다가길어봤자 일 초나 이 초하지만 평생을 갈지도 모를 별이제 안에서 빛을 짜낸다낮에도 보이는 별이 되어어두워져서야 나타나는 별차례차례 불러낸다...........................................................................
밥 한 그릇 동길산금방 지은 따뜻한 밥 한 그릇나를 먹이려고 상에 올리네왼쪽에 밥그릇 오른쪽에 국그릇짝을 맞춘 젓가락 숟가락을 사이에 놓네어쩌다 한 번쯤은 두 번쯤은나도 나에게 잘 먹이고 싶네금방 지어서 김이 나는 밥목이 메게 먹이고 싶네나를 목메게 하고 싶네나를 나처럼 생각하던 사람평생에 한 번쯤은 두 번쯤은같이 밥 먹고 싶네젓가락 숟가락 짝을 맞추고많이 먹어라 먹고 더 먹어라목이 메게 먹이고 싶네내가 목메고 싶네..................................................................
당신 동길산나는 안개 이쪽에 있고당신은 안개 저쪽에 있다안개는 길어야 하루아무리 길어도내가 당신을 바라보는 마음의 길이보다길지는 않을 것이다안개 저쪽에서 새가 날아오고새가 방금 나온 그 틈으로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마음이 보인다마음은 안개보다 진해서안개가 아무리 가리려고 해도길어야 하루이거나 그때뿐이다눈을 감아도 당신이 보이듯안개가 아무리 가려도 당신이 보인다안개가 진하면더 진한 당신가장 진한 안개 저쪽에서새가 날아온다.................................................................
길이 끊기다 동길산눈이 와서 아침부터 펑펑 와서 길이 끊긴다 밖으로 나가는 길 밖에서 들어오는 길 모두 끊겨 눈 속에 갇힌다 바깥과 왕래가 끊기고 나서 알아챈다 나가는 길이 끊기면 들어오는 길도 끊긴다는 걸 나가는 길과 들어오는 길이 다르지 않고 같다는 걸 그것도 모르고 나와 바깥 사이에 놓은 여러 갈래 길 그 길을 끊는다고 아침부터 눈이 온다...........................................................................................................
산 너머 산 동길산산 너머 산 높다 높은 산 어이 다 오르리 바라보다가 날 저문다 기온 뚝 떨어지고 낮 동안 제 갈 길 가던 철새 산으로 떨어진다 산은 새가 날개를 접는 새장 산 너머 산 바라보다 날 저물고 산을 빠져나가는 길 어둡다 내 갈 길 어둡다................................................................................................................................................................
황토 동길산나는 황토를 비비고집주인 후배는 벽에 바른다나도 처음 하는 일후배도 처음 하는 일황토가 사람을 알아본다비빈다고 비벼도 황토는 묽거나 질고바른다고 발라도 떨어지거나 갈라진다안쪽 벽 여러 면이고 바깥벽 여러 면인데벽 한 면 채우려고처음 사귀는 사람만큼이나 공을 들인다황토벽은 숨을 쉰다는데사람과 매한가지라는데얼마큼 사귀고 알아야비비는 대로 비벼지고바르는 대로 발라지는 걸까얼마큼 공을 들여야눈빛만 보고도 척 알 수 있는 걸까흙색만 보고도 척 알 수 있는 걸까중참으로 차려진 소주를 한 잔숨을 쉰다는 황토에 친다사람과 같다는 황토에
나를 올리다 동길산가운데가 처진 빨랫줄을대나무 장대로 받친다빨랫줄이 올라가고빨랫줄에 넌 빨래가 올라간다빨간 물이 나던 수건이 올라가고빨간 물이 들던 내의가 올라간다수건에서 물이 떨어지고내의에서 물이 떨어진다떨어지는 물이 땅바닥을 판다수건은 수건만큼 파고내의는 내의만큼 판다땅을 파면나도 나만큼은 판다장대가 건들댄다빨랫줄이 건들대고 빨래가 건들댄다장대를 더 높이 받친다빨래가 아까보다 높이 올라간다내가 쓰던 수건이내가 입던 내의가나보다 높이 올라간다남은 집게를 손가락에 집는다내가 수건만큼 올라간다내가 내의만큼 올라간다...........
숲 동길산할 말 못할 말 마구 해서 윤기 나는구나 돌고 도는 말이 생가슴에 못을 박아 꽃 피고 새 우는구나 속속들이 듣게 하려고 나무들이 자리 내줘 길이 생기는구나 말이 찰랑찰랑 흐르며 그 길을 적시는구나 말 다 하고 상처받은 고목은 저리 장엄하구나.................................................................................................................................................................
소 동길산울어서 목이 쉰 소가 또 운다사흘을 울던 소가밤에도 울고 낮에도 운다젖 빨던 새끼를 찾아 운다젖 떼자 팔린 새끼를 찾아 운다웃는 얼굴을 보인 적이 없어감정이 있겠나 여긴 소가사흘을 울고도 모자라서밤에도 울고 낮에도 운다사흘을 울고도 모자라서제가 사는 집을 들이받는다제 성한 몸을 들이받는다어디 있는 줄 안다면문짝 박차고 나갔을 소가제 몸에서 난 새끼어미 우는 소리 듣고 찾아오라고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고 운다목이 쉬어서힘에 부쳐서한 번은 길게 울고한 번은 짧게 운다...................................
나무를 밀다 동길산감나무를 부둥켜안고 민다나무가 밀리는지 내가 밀리는지 겨룬다지붕 두 배는 높은 나무와지붕 반도 안 되는 내가식전에도 겨루고 식후에도 겨룬다나는 나무를 미는데도 나무에 밀리고나무는 가만히 있는데도 내가 밀린다웃통을 벗으면 불그죽죽 피멍 든 어깻죽지나무에 밀린 자국이다그저께도 밀고 어제도 밀었으면나무뿌리 한 뿌리 정도는 움찔대고이파리 두엇쯤은 나가떨어질 만도 한데움찔대고 나가떨어지는 건그저께도 나고 어저께도 나다오늘은 어쩐지 예감이 좋다나는 가만히 있는데도나무가 높은 데서부터 움찔댄다이파리가 스물은 서른은 나가떨어진다
우리집 대밭 동길산같은 나무라도여기 나무와 저기 나무가 다르고한 나무라도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어느 나무든나란히 세워서 보면 다 다르고어제와 오늘하루도 같은 나무가 없다그렇긴 해도같은 나무라면여기 나무와 저기 나무가 다르지 않고한 나무라면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다멀리서 보면 높이가 다 다르고가까이서 보면 굵기가 다 다른대밭 대나무그렇긴 해도여기 나무와 저기 나무가 다르지 않고하루도 같은 나무 아닌 적 없는우리집 대밭..................................................................
장마철 동길산시 한 줄이 아무리 길어도비 한 줄보다 길지 못하구나시 한 줄이 아무리 적셔도비 한 줄보다 적시지 못하구나시 한 줄이 비 한 줄보다 못해서부끄러운 것이 아니라시 한 줄이 비 한 줄보다 못한 걸반백이 다 된 나이이제야 안 것이 부끄럽구나내가 쓴 몇백 편의 시그것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빗줄기가지붕의 골을 타고 공중의 골을 타고잔돌 깐 마당에 줄기줄기 골을 판다어제도 비 오고 오늘도 비 오고내일도 비 온다는 장마철세상의 모든 시를 합친 것보다 많을 빗줄기가시보다 길게 온다시보다 적시면서 온다................
잎의 역설 동길산잎에게 빛은 생명수다빛이 스며들지 않으면시름시름 시들다 끝내 죽는다아프리카 어떤 나무는 그걸 알아서제 잎에 스스로 구멍을 내어빛이 그 아래 잎에 스며들도록 한다내가 죽어야 네가 사는잎의 역설이다아프리카 어떤 나무만 그러랴내가 이만큼이나 얼굴 들고 다니고이만큼이나 밥 먹고 살게 되기까지보이는 곳도보이지 않는 곳도구멍 숭숭 난 만신창이 당신가장 높고 가장 파릇한나무 맨 위에 난 잎당신.............................................................................
꽃 진 자리 동길산꽃이 지면꽃만 슬프랴남 보는 데선 참아 그렇지속울음 안으로 삼켜꽃 진 자리퉁퉁 부어올라 있다등 돌리면금방 터질 것 같다남 보는 데선 애써 참느라이파리마다 힘줄시퍼렇다......................................................................................................................................................................................................
동해물 동길산새벽 다섯 시 직전라디오에서 애국가가 나온다겨우 들던 잠이동해물과 백두산 우렁차게 나오면서 달아난다애국가 불러본 게 언제였나가물거려도 난생처음 부른 날은 기억난다초등학교 애국가 첫 시간풍금 한 소절 따라 부르기 한 소절동으로 시작하는 동해물이성씨가 같은 집안사람인 줄 알고 자랑스러웠지학교에서 배운 노래 맨 앞에 나오는 집안사람 동해물집에선 아무도 모를 거야얼른 가서 알려 주고 싶었지내 말 듣고 놀란 표정 크게 짓던 식구들애국가 첫 시간에서 아득하게 멀리 온 지금사람이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분명한 길 택해나에게서 아득하게
나뭇가지 한 가지 동길산나 아직 한 번도 나무를 기어오르지 못했네손바닥 발바닥을 나무에 붙이고나무가 갈라지는 곳까지 올라가지 못했네나무를 타기엔 내 몸 언제나 부쳤네힘이 아니라 요령으로 오른다지만팔힘 부쳐다리힘 부쳐나 아직 한 번도 나무를 타지 못했네나무가 갈라지는 곳에 나를 올려놓지 못했네기어오르다가 미끄러지는 게 겁나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게 겁나한 번도 나무와 하나 되지 못했네나무 잘 타는 사람을 보면나무에 오를 만큼만 내 몸 가뿐했으면 싶네나무가 갈라지는 곳에나를 나뭇가지 한 가지로 올려놓고한 팔 두 팔 생가지 쳐들었으면 싶네.
스와니 강물 동길산남 다 자는 새벽세계애창가곡을 유튜브로 듣다가머나먼 저곳 스와니 강물울컥내 안에서 강물이 넘친다중학교 땐가 처음 들은 이 노래이 세상에 정처 없는 나그네의 길내 크면 나그넷길을 가리라이 세상에 정처 없으리라교직에 있었으면 퇴직할 나이가 다 된 지금기회가 없지는 않았으나강물이 넘쳐 길은 막혔고강을 건널 용기는 나지 않았다남 다 자는 새벽세계애창가곡을 유튜브로 듣다가울컥내 안에서 강물이 넘친다머나먼 저곳 스와니 강물..........................................................
뒷짐 동길산감나무 가지가 지붕을 넘어와풋감이 지붕을 탕탕 치며 떨어진다하루에도 대여섯 번 탕탕 쳐자는 사람을 꿈쩍꿈쩍 놀라게 한다가지의 길이가 뿌리의 길이가지가 지붕을 넘으면 뿌리가 집을 파고든다뿌리가 집을 파고들기 전에파고들어 집을 번쩍 들기 전에가지를 쳐 내지 그러나집에 들른 마을 사람들 둘에 하나는걱정의 가지를 치고걱정의 뿌리를 친다대답은 금방 하지만 행동은 느리다나무에 올라가는 것 예삿일 아니고감나무 가지는 약해 잘 부러진다는데나무가 네 이놈! 나를 떨어뜨리면 어떡하나풋감이 지붕을 탕탕 치고 마당에 떨어지듯내가 지붕을 탕탕
비는 내리다가 동길산비는 내리다가비끼리 부딪치는 일은 없을까가늘거나 적게 내릴 때는 그렇다 쳐도소리가 들리도록 세찬 비는비끼리 부딪치며 내리지도 싶은데본다고 봐도부딪치며 내리는 비는 없다어쩌다 중심을 놓치거나처음과 달리 마음이 흔들려서부딪쳐 가며지켜야 할 선을 넘어가며가장 낮은 곳에 이르는 비내 눈에는 도통 보이지 않는다그 어느 비도 망설이지 않고서자기가 내려야 할 자리 닿는다중심을 놓치기도 하련만마음이 흔들리기도 하련만내 모습 같은 비본다고 봐도도통 보이지 않는다......................................
꽃이 깨물다 동길산꽃이 꽃을 깨물어서꽃이 진다꽃을 한 잎 한 잎 깨무는 꽃은꽃이 한 잎 한 잎 지고꽃을 한꺼번에 깨무는 꽃은꽃이 한꺼번에 진다자기를 깨물어서 지는 꽃사람이 그러랴내가 그러랴지는 꽃이꽃 위에 앉는다꽃이 꽃을 깨물어서꽃은지고 나서도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