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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정성욱그 여자 밀물 드는 바닷가에 서 있다파도가 발목을 덮는데도 서 있다“위험해요. 곧 물이 들어와요”아직도 그 여자 거기 서 있다그 여자만 섬이 된다.결국 사랑은 혼자 남는 것이다....................................................................................................................................................................................................
정성욱의 시가 말을 걸다
편집위원 정성욱
2022.09.15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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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정성욱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던 날,보살도 팔아먹고 부처도 팔아먹고조선의 물과 달도 다 팔아먹었네.부처가 걸친 붉은 법의(法衣) 흰 사라에선재여 수월(水月)이라물 위에 뜬 달이 조선을 비추나니그대는 지금 깨달음을 얻었는가.돌아오지 못하는 고려 천년의 부처가아직도 가가미진자 거기에 있어그대는 더 이상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네정병에 담긴 버들가지와 청죽(靑竹) 두 가락바람에 스치듯이 흔들리는 지금그대는 흐르는 달과 물의 물결을 따라가서모든 선지식을 만나서 가르침을 구하게.깨달음이란 지천에 늘려 있으니달이 부처이고
정성욱의 시가 말을 걸다
편집위원 정성욱
2022.08.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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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 정성욱그곳에 서면 밀려드는 게 있다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 같은 게 있다그걸 그냥 밀물이라고 나는 부른다.살다가 보면, 주먹을 한껏 허공에 날리고 싶은 순간이 있고한 두릅 꿸 수 없는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는 것다만 그것의 무게를 온전히 달수가 없을 뿐,싫은 것들이 많아도 어쩔 수 없이그걸 받아들이는 걸 밀물이라고 한다.그러다가 언젠가는 그 슬픔도 모조리 다 빠져나가서썰물의 모래밭에 앙상한 소금기로 남는 것그게 삶이고 그게 바로 산다는 것이다.................................................
정성욱의 시가 말을 걸다
편집위원 정성욱
2022.07.1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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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속 정성욱스님, 이제 떠나렵니다종소리 그리워서 가도되나목탁소리 그리워서 가도되나산꽃이 그리워서 환장할 긴데그리 모질게 훌쩍 가도되나온몸이 그리움으로 몸살 날 긴데정말 그대로 가도되나상좌가 파계하려고 하자노스님 억청이 무너져서그래 가려면 빨리 가거라중놈은 절밥을 먹어야 하는데그려, 가서 멍들거든 다시 와라.............................................................................●시작노트승가(僧家)에서 은사와 상좌는 아버지와 아들과 같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힘든 승가
정성욱의 시가 말을 걸다
편집위원 정성욱
2022.06.2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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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 가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정성욱봄날 강화 석모도에서 지는 해를 바라본다간혹 차가운 바람이 불고 뱃고동이 울린다저물어 가는 것들은 모두 아름다운가.사유(思惟)는 먼 섬을 떠돌다가거친 파도가 되어 발 앞에서 부서진다산다는 건 누군가를 용서하고 용서받는 일,살아온 날들이 많아서 죄스러움이 깊어서또 다른 삶의 질문들을 내게 던진다.나는 그동안 무언가를 온전히 버리고 놓지 못했었다저물어 가는 것들이 모두 아름다움이란 걸 알았다면,이미 오래전에 집착의 끈을 놓아버렸을 것이다.그러나 지나온 길은 어쩔 수 없는 것어미 새가 저녁이 되면
정성욱의 시가 말을 걸다
편집위원 정성욱
2022.06.0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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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산 대숲에서 정성욱아홉산 대숲에 서니바람 소리가 귓가에 서걱인다혼자 관미헌(觀微軒)에 앉아한 모금 말간 댓잎차에 입술 축이니사독(蛇毒)의 병든 마음들이실타래처럼 풀어진다.대숲 저울에 몸무게를 달아 보니탐욕은 삼백 근(根)성냄이 오백 근(根)어리석음이 일천 근(根)이라죽순 줄기 따라 뻗어나가는 세속의 먼지와 때,이리도 내 몸이 병든 줄을 미처 몰랐다.구갑죽 황금죽 자죽 포대죽 호죽 반죽지조 높은 죽(竹)들의 이름들을 하나씩 떠올리고탐진치 삼독(三毒)을 베고 나니댓잎에 구르는 맑은 이슬방울,아홉산 대숲에 서면거풍(擧風)에 말리던서책
정성욱의 시가 말을 걸다
편집위원 정성욱
2022.05.2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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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사 배롱나무 정성욱늙었어도 나뭇가지에 꽃 일만 개 쯤매달 힘은 아직은 있어.누가 날 보고 늙었다고 하지젊은 것들은 날보고 늙었다고뒷담화를 몰래 수근대지만한 오백년 살면서도 바람 한번 피우지 않고꽃피고 질 때를 알지,한번 꽃피면 백일동안은 거뜬하게 버티지.젊은 것들은 꼭 사랑하다가 지치면배롱나무 아래 찾아와서세상 떠나가도록 울지만그래도 나는 외면하지 않아.더러는 부드러운 입술 같은푸른 잎을 드리우고포근하게 위로해 주기도 하지.눈가에 눈물 대롱대롱 달고 가는젊은 것들을 보드라운 바람으로달래주기도 하지,세상 늙지 않는 건 없어나처럼
정성욱의 시가 말을 걸다
편집위원 정성욱
2022.05.11 0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