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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청화의 관상 인문학]에서는 이문열 평역 의 장면 둘을 보여준 적이 있다.하나는 유비가 멀리 떨어져 있는 관우의 죽음을 부지불식간에 몸으로 느끼는 장면이다.“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유비가 공연히 몸이 뒤틀리고 살이 떨려 앉아도 서도 편치 않았다. 뿐만 아니었다. 밤이 되어도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촛불을 밝혀두고 책으로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다른 하나는 장비가 부하 둘의 칼에 찔려 죽게 되는 날 어떤 불길한 기운을 느끼는 장면이다.“장비는 그날 밤따라 정신이 어지럽고 까닭 없이 어찔어찔해 몸놀림이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대표/발행인 이광우
2021.02.22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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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청화의 관상 인문학]에는 마음과 관상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몇 번 나온다.에서는 송나라의 고효표(高孝標), 고효적(高孝積) 쌍둥이 형제 사례에서 ‘귀는 전체적으로 흰데 윤곽은 불그스레하며 기운이 맑다’는 표현을 볼 수 있다.청화학술원 박청화 원장은 ”귀는 몸의 뿌리 기운과 신장의 기운을 대변하는 창으로 해석하는데 귀가 불그스레 하고 맑다는 것은 컨디션이 좋은 상태를 뜻한다“면서 ”생활이 건전하고 마음의 방향이 긍정적이면 얼굴의 기색도 자연 좋아지는 법이라 늘 챙길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다.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대표/발행인 이광우
2021.02.09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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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청화의 관상 인문학]에는 '기세(氣勢)'에 대한 이야기가 두 번 나온다. 유비와 유방의 눈을 통해서 본 조조와 항우의 기세다.유비는 조조를 보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문득 선뜩한 기분을 느꼈다. 가늘고 길게 찢어진 두 눈에서 쏟아지는 날카로운 빛 때문이었다. 엷은 입술, 짙으나 숱이 많지 않은 수염, 특별히 빼어날 건 없는 얼굴에 일곱 자에 못 미치는 키, 붉은 전포와 호화로운 장식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돋보이지 않는 용자이었지만 그 몸 전체에서는 이상한 힘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유방도 항우를 보면서 ‘역발산기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대표/발행인 이광우
2021.01.26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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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무리됐다. 그동안 다룬 이야기들의 교훈을 정리해 본다.1.한신(1편)과 범려(2편) 편은 나아감과 물러남에 관한 이야기이다.책사 괴통은 회음후 한신의 등 관상을 언급하면서 유방의 그늘에서 벗어나 크게 독립하라고 부추긴다. 관상학에서는 큰 승부를 낼 때 등이 원천적인 힘을 제공한다고 본다.이때 괴통이 유명한 말을 하나 한다.“하늘이 주시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화(禍)를 당하고, 때를 만났는데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받는다고 들었습니다.”“‘맹호라도 꾸물대면 벌이나 전갈이 끼치는 해(害)만큼도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대표/발행인 이광우
2021.01.1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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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는 진나라를 무너뜨린 뒤 스스로를 서초패왕(西楚霸王)이라 일컬었던 의 영웅이다. 항우에게는 늘 따라다니는 말이 있으니,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는다)’다.이문열의 에 유방이 본 항우에 대한 일단의 묘사가 나온다.“범증 곁에 서 있는 낯선 젊은 장수를 본 패공은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고 천 근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여덟 자 키에 우람한 몸피나 그걸 둘러싼 전포(戰袍)와 갑주(甲冑)의 삼엄한 뿐만이 아니었다. 불꽃이 이글거리는 듯한 두 눈과 불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편집위원 박청화
2020.12.29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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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평역 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하나.“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유비가 공연히 몸이 뒤틀리고 살이 떨려 앉아도 서도 편치 않았다. 뿐만 아니었다. 밤이 되어도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촛불을 밝혀두고 책으로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둘.“공명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허정의 말을 받았다.실은 나도 관공(관우)이 이미 죽음을 당한 걸 알고 있었소. 어젯밤 천상(天象)을 보니 장성(將星) 하나가 형초(荊楚) 땅 쪽으로 떨어지더구려. 그러나 주상께서 지나치게 상심하실까 봐 아직도 감히 말씀드리지 못했소.”셋.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편집위원 박청화
2020.12.14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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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와 이문열의 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영포(英布)는 진(秦)나라의 평민이었다. 소년 시절에 점을 보는 사람이 그의 상을 보고 말했다.“너는 나중에 아주 모진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귀하게 되고 마침내는 왕이 될 것이다.”여느 아이들 같으면 듣고 나서 먼저 두려워해야 마땅한 말이었으나 영포는 오히려 흐뭇한 표정이었다.영포는 성년이 되었을 때 법을 위반하여 경형(黥刑)을 받았다. 경형은 칼로 죄인의 얼굴에 죄명을 새기고 거기에 먹물을 부어 검푸른 자국으로 남게 하는 고대의 형벌 중 하나다. 묵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편집위원 박청화
2020.12.01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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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948~1031)은 다 알다시피 ‘귀주대첩’이란 쾌거를 이룬 고려 때의 장군이자 중신이다.그러나 용모는 볼품이 없었다고 한다. 는 강감찬의 용모를 두고 ‘체모왜루(體貌矮陋)’란 표현을 쓰고 있다. ‘키가 작고 보기가 흉하다’는 뜻이니, 요즘말로 하면 ‘루저(loser)’쯤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조선 초의 문신 성현(1439~1504)의 에는 귀도 자그마했다는 기록이 있다.강감찬은 그러나 71세에 귀주대첩에서 승리했고, 83세에 최고 관직인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다. 그리고 84세까지 천수를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편집위원 박청화
2020.11.2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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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948~1031)은 다 알다시피 ‘귀주대첩’이란 쾌거를 이룬 고려 때의 장군이자 중신이다.용모는 볼품이 없었다고 한다. 는 강감찬의 용모를 두고 ‘체모왜루(體貌矮陋)’란 표현을 쓰고 있다. ‘키가 작고 보기가 흉하다’는 뜻이니, 요즘말로 하면 ‘루저(loser)’쯤 되겠다.기록을 더 들여다보면 “강감찬이 졸하였다. (...) ‘체모왜루’하고 옷은 때가 묻고 해져서 볼품으로는 보통 사람에 지나지 않았으나 얼굴빛을 엄정하게 하여 조정에서 큰일을 다룰 때면 커다란 계책을 결정하였고 그리하여 나라의 기둥과 주춧돌이 되었다”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편집위원 박청화
2020.11.0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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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를 볼 수 없다. 조선은 공신의 초상화를 그려서 보관했지만, 이순신은 전사한 탓에 초상화를 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순신의 관복 입은 영정은 월전 장우성 화백이 1952~53년에 그린 것이다. 충남 아산 현충사에 있다. 이 초상화는 따라서 상상화인 셈인데, 고증을 잘못했다는 지적이 나와 철거 논의가 진행 중이다.서애 류성용은 에서 이순신을 두고 “얼굴이 단아하고 정갈해서 수양 근신하는 선비 같다(容貌雅飭. 如修謹之士)”고 했지만, 이 역시 선비에 대한 의례적인 표현에 불과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편집위원 박청화
2020.10.27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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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이 평역한 를 읽는다. 장비가 장판교에서 혼자 조조의 대군을 막아내는 장면이다."장비가 고리눈을 부릅뜨고 가만히 보니 적군 뒤편에서 푸른 비단 일산(日傘)이 움직이며 그 뒤를 모월(旄鉞, 깃대장식과 도끼)과 정기가 뒤따르는 게 눈에 띄었다. 이는 틀림없이 조조가 의심이 일어 스스로 살펴보려고 오는 것이라 짐작한 장비는 짐짓 기세를 올려 큰소리를 쳤다.-나는 연(燕)나라 땅 사람 장익덕이다! 누가 나와 한판 죽도록 겨뤄보겠느냐?”일부러 기세를 과장하고자 지르는 소리라 마치 큰 우레 같았다. 그 소리를 들은 조조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편집위원 박청화
2020.10.0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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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선(善)을 권하는 중국 민중도교(民衆道敎)의 성전(聖典)이다. 이 책에 나오는 설화 속의 관상을 한번 살펴보자.중국 송나라에 고효표(高孝標)와 고효적(高孝積)이란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 행동, 말투, 재능 모두가 똑같았다.16세가 되어 과거시험을 보려 하는데, 진희이(陳希夷)라는 도사가 둘의 관상을 보아주었다.“용모가 준수하고 콧날이 곧으며 입가에 붉은 점이 있다. 귀는 전체적으로 흰데 윤곽은 불그스레하며 기운이 맑다. 안광(眼光)이 빛나기까지 하니 반드시 급제할 것이다.”(...)이후 진희이가 둘을 다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편집위원 박청화
2020.09.2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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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선(善)을 권하는 중국 민중도교(民衆道敎)의 성전(聖典)이다. 이 책에 나오는 설화 속의 관상을 한번 살펴보자.중국 송나라에 고효표(高孝標)와 고효적(高孝積)이란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 행동, 말투, 재능 모두가 똑같았다.16세가 되어 과거시험을 보려 하는데, 진희이(陳希夷)라는 도사가 둘의 관상을 보아주었다.“용모가 준수하고 콧날이 곧으며 입가에 붉은 점이 있다. 귀는 전체적으로 흰데 윤곽은 불그스레하며 기운이 맑다. 안광(眼光)이 빛나기까지 하니 반드시 급제할 것이다.” (1)(...)이후 진희이가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편집위원 박청화
2020.09.07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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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선(善)을 권하는 중국 민중도교(民衆道敎)의 성전(聖典)이다. 유불도(儒佛道 : 유교 불교 도교) 삼교의 합일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4세기 초의 도교 이론서 에 사상적 끈이 닿아 있다.이 말하는 바, 자신의 행위에 따라 운이 바뀌거나 열리는 사례를 한번 보자.중국 송나라에 고효표(高孝標)와 고효적(高孝積)이란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 행동, 말투, 재능 모두가 똑같았다.16세가 되어 과거시험을 보려 하는데, 진희이(陳希夷)라는 도사가 둘의 관상을 보아주었다.“용모가 준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편집위원 박청화
2020.08.24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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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선(善)을 권하는 중국 민중도교(民衆道敎)의 성전(聖典)이다. 유불도(儒佛道 : 유교 불교 도교) 삼교의 합일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4세기 초의 도교 이론서 에 사상적 끈이 닿아 있다.이 말하는 바, 선을 행하면 운이 바뀌거나 열리는 사례를 하나 보자.-중국 청나라 때 한 서생이 과거시험을 잘 보았다. 기대가 컸다.하루는 절에 놀러갔다가 처마 밑에서 점을 보는 사람을 만났다. 점보는 사람은 서생의 관상을 보더니 “당신은 골상이 차갑고 얇아서 설령 반고나 사마천 같은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편집위원 박청화
2020.08.1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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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중이 짓고 이문열이 평역한 에 이런 대목이 있다.-태사승 허저가 조조에게 ”대왕께서는 관로(官輅)를 모르십니까? 관로는 (...) 생김이 보잘 것 없고 술을 좋아하나 광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 어렸을 적부터 하늘의 별을 쳐다보기 좋아해 밤에는 잠을 잘 생각을 안 했다고 합니다. (...) 이웃 아이들과 놀아도 땅바닥에 천문(天文)을 펼쳐놓고 해와 달과 별을 그려 넣을 정도였다 합니다. 자라서는 을 깊이 공부했으며, 풍각(風角 : 옛날 점술의 하나로 바람과 음(音)으로 길흉을 안다고 함)을 볼 줄 알고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편집위원 박청화
2020.08.03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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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중에 '낭고상(狼顧相)'이란 게 있다. 이리나 늑대처럼 고개를 180도 뒤로 돌릴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옛날 식으로 말하자면 '반역을 할 상'이랄 수 있는데, 달리 말하면 뜻과 재주가 워낙 비상해서 수하로 부리기 힘든 인물이란 함의를 품고 있기도 하다.이문열이 평역한 에 이 표현이 나온다. 사마의의 인물 됨을 이야기하면서다.-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한데다 군사를 부리는 데도 남다른 재주가 있어 일찍부터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조조도 그의 재주를 높이 사서 불러들이기는 했으나 마음속으로는 그리 믿지 않았다.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편집위원 박청화
2020.07.1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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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이 평역한 의 한 대목이다.-어머니 오태부인은 손책을 낳을 때는 달을 품은 꿈을 꾸었고, 손권을 낳을 때는 해를 품은 꿈을 꾸었다.-손권은 용모도 몇 가지 특이했다. 우선 네모진 턱에 입은 메기처럼 컸고, 눈에서는 정광(精光)이 넘쳐 흘렀다. 거기다가 눈동자는 푸르고 수염은 자줏빛을 띠니 보는 사람이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손책이 살아 있을 때 사람으로 오(吳)에 온 적이 있는 유완이란 이가 손씨 가문의 여러 형제들을 본 뒤에 어떤 사람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내가 손씨 형제들의 상(相)을 보니 각기 그 재주가 뛰어나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편집위원 박청화
2020.07.0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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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마천은 에 공자의 장단점을 다채롭게 기록해 두었다. 개략적으로 살펴본다.▶공자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공자는 노나라 사람으로서 가난하고 미천했다.-장성해서는 창고를 관리하는 미미한 관리를 지낸 적이 있는데, 들고 나는 것이 정확했다. 관리로서 가축을 관장했을 때는 가축이 번성했다.-노를 떠난 뒤에는 간난고초(艱難苦楚)로 신음했다. 제에서 배척당했고, 송과 위에서 쫓겨났으며, 진과 채에서 곤욕을 치렀다. 늙어서 노로 돌아왔다.▶공자는 인간적 약점이 적지 않았다. 외모도 매력적인 구석이 별로 없었다-공자는 태어났을 때부터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편집위원 박청화
2020.06.2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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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이 평역한 를 보면 오나라의 패자 손견은 자신도 영웅적 풍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두 아들의 관상은 더 빼어났다고 되어 있다.손견에 대한 묘사를 보자.-유비는 공손히 손을 모으며 다시 한번 손견을 뜯어보았다. 한눈에 비범함이 드러나는 용모였다. 짙은 눈썹 아래 부리부리한 눈에서는 정기가 쏟아지는 것 같고 우람하면서도 다부져 보이는 체격에서도 야생말과 같은 힘이 용솟음치는 듯했다. (...) 얼굴이 넓고 희며 호랑이 허리에 곰의 어깨였다.이번에는 손견의 첫째 아들 손책과 둘째 아들 손권에 대한 묘사를 보자.-(손
박청화의 관상 인문학
편집위원 박청화
2020.06.09 0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