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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오대산 암자에서 월서스님이 동안거(冬安居) 수행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한 평 남짓한 암자에서 3개월 동안 안거를 회향하고 내일이면 산을 내려갈 저녁 무렵이었습니다.한 여인이 암자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아이고 스님, 제가 큰절에서 기도를 하고 산을 내려가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어두워서 도저히 내려갈 수 없으니 오늘 하룻밤만 이 암자에 머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그 순간, 참선수행 중에 꾸벅꾸벅 졸기만 해도 여지없이 죽비를 내려치는 은사이신 금오스님이 떠올랐습니다.“보살의 사정이야 딱하지만 지금 저는 안거
정법안 스님의 생각
편집위원 정법안
2022.11.10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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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에 신도들이 찾아와 등을 달고 난 뒤 월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왔는가. 어찌 이리 많이도 왔는가. 평소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오늘은 왜 이리도 많이 왔는가.”월서 스님이 한 보살에게 물었습니다.“오늘 무엇 때문에 왔어?”“스님, 부처님 오신 날이라서 등을 달기 위해 왔습니다.”“그래? 등은 왜 달아? 남편, 아이 생일날에도 등을 달아. 그래야 복을 받지.”보살은 머리를 갸우뚱했습니다.“내 마음이 부처이므로 내 안에 있는 부처를 찾아야 한다. 보살이 바로 부처이고 남편과 아이들이 부처이다. 부처님
정법안 스님의 생각
편집위원 정성욱
2022.10.1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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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밀양에 있는 어느 비구니가 계신 암자에 일이 있어 잠시 하룻밤을 청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세상의 아름다운 인연을 경험했습니다.그날, 한 비구니 스님의 시선이 내게 전해 오는 것을 느꼈는데 그녀는 초등학교 시절 우리 반 여학생이었습니다.비구니와의 뜻하지 않은 만남 때문에 내내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설레었던 것입니다. 나는 어릴 적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그날 저녁, 스님은 내게 차를 청하면서 물었습니다.“처사님, 옛날 생각을 떠올리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그대로 두세요.”나는 그 말에
정법안 스님의 생각
편집위원 정성욱
2022.10.1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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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우화 스님이 계신 전남 나주 다보사에 도둑이 들었습니다.당시 절에서는 법당불사를 위해 몇 년 동안 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부엌칼을 든 복면 도둑이 들었던 것입니다.“법당을 짓기 위해 모은 돈이 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 어서 돈을 내놓으시오.”“돈은 있지만 내놓을 수 없소.”“내가 스님을 죽일지도 모르겠소.”“할 수 없수다. 지난 몇 년 동안 불사를 위해 아끼고 아낀 것이라 나를 죽여도 내놓을 수 없소. 죽이든지 살리든지 마음대로 하소.”실랑이 끝에 새벽이 되었습니다.도둑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스님 같은 분은 처음 보았소
정법안 스님의 생각
편집위원 정법안
2022.10.0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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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의 일입니다. 휴가차 며칠간 암자에 머물고 있었는데 한 여인이 어린 딸과 함께 왔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얼굴이 수척하고 행색이 무척 초라했습니다.여인은 마당에 서 있는 나를 보고 다가와선 말을 건넸습니다.“안녕하세요. 여쭈어볼 게 있습니다.”“네 무슨 일인지요.”“혹시 이 암자에는 스님이 몇 분이나 계시나요.”“그건 왜요.”여인은 머뭇거리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그럴 일이 있었어요.”“주지 스님과 부전 스님 그리고 노스님이 계시는데 부전 스님은 얼마 전에 떠났는데요.”여인은 안색이 변하면서 다시 물었습니다.“혹시 그 스
정법안 스님의 생각
편집위원 정법안
2022.09.2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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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원효 스님이 사형인 대안 스님을 만나기 위해 토굴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대안스님은 없고 새끼 너구리가 죽은 어미 곁에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원효 스님은 어미 너구리의 왕생극락을 발원하기 위해 을 큰소리로 염불했습니다. 그러자 새끼 너구리는 오히려 염불을 듣고 더 크게 울부짖었습니다.그때 대안스님이 돌아와서 원효 스님이 염불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습니다.“지금 스님은 누구를 위해 염불하시고 있는 것입니까?”“당연히 죽은 어미 너구리의 왕생극락을 빌고 있지.”대안 스님은 어이가 없어서 반문하였습니다.
정법안 스님의 생각
뉴스아고라
2022.09.0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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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찾는 서울 북악산 심곡암에는 사철 내내 청죽(靑竹)잎이 무성합니다. 뿌리 내린 대나무는 4년 동안 죽순만 보이다가 그 이후엔 위로만 뻗는다고 합니다. 줄기 속은 텅 비어 있고 나이테가 없어도 강한 바람에 쉽게 꺾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옛날 선비들은 대나무를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곧은 지조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스님과 차를 나누다가 물었습니다.“스님은 이런 경치 좋은 곳에서 수행하고 있으니 참 좋겠습니다.”“왜 그렇게 생각하지.”“창을 열면 대나무 숲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청아한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수행할
정법안 스님의 생각
편집위원 정법안
2022.08.3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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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법주사 조실 월서 스님에게 여쭈었습니다."스님, 마음이 힘들고 편치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어지러운 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겠는지요."잠시 후 시자가 황토가 섞인 물을 흰 그릇에 담고 왔습니다."이 그릇을 흔들면 어찌 되겠는가.""당연히 흐려지겠지요.""가만히 두면 어찌 되겠느냐.""황토가 가라앉고 그릇 속의 물이 맑아지겠지요."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그렇다. 지금 너의 마음이 힘든 건 번뇌 때문이다. 그로 인해서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괴롭힌 까닭이다. 이 그릇 속의 황토물처럼 가만히 내버려 두면 그 마음 속의 어지러움도
정법안 스님의 생각
편집위원 정법안
2022.08.1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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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요’와 ‘적멸’이란 단어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큰 절보다는 산속의 암자들을 줄곧 다녔습니다. ‘고요’란 단어는 ‘조용하다’는 표현에서 나아가 ‘적막’에 가깝고 ‘적멸’이란 단어는 그야말로 모든 ‘소리와 빛’들이 모두 사라진 상태 곧 열반의 경지를 뜻합니다. 때문에 불가에서는 붓다의 진신사리가 있는 곳을 ‘적멸보궁’이라 부릅니다.어느 여름, 서울의 찌든 생활을 뒤로하고 휴가차 남해에 있는 작은 암자인 망운암을 갔던 적이 있습니다. 바랄 망(望) 구름 운(雲), 구름을 끼고 앉은 암자라는 뜻입니다.해가 저물 무렵, 암자에
정법안 스님의 생각
편집위원 정법안
2022.08.1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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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월 스님은 19세기 후반 근대한국불교의 중흥을 이루었던 경허 스님의 제자입니다. 하루는 한 신도가 49재를 지내달라고 혜월 스님에게 돈을 주었는데 스님은 이 돈을 가지고 있다가 양쪽다리가 몽땅 없는 걸인이 길에서 손을 내밀자, 돈이 얼마인지 헤아려 보지도 않고 모두 주어버렸습니다.49재가 가까워졌는데도 스님은 도무지 재물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절의 살림을 맡고 있던 원주 스님이 물었습니다.“스님, 내일 재를 지내야 하는데 제주에게 받은 돈을 주시지요.”“응, 그래 그런데 말이다. 길을 가다가 딱한 사람이 있어서 모두 주어버
정법안 스님의 생각
편집위원 정법안
2022.08.0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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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스님이 법주사에 계실 때입니다.어느 날 단단한 매듭으로 묶인 소포가 왔습니다.시자는 손가락으로 그 매듭을 풀려고 하다가 풀리지 않자 칼로 ‘싹둑’ 자르려고 했습니다.그 순간 그 모습을 본 금오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얘야, 인연이란 그렇게 날카로운 칼로 싹둑 자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매듭을 풀 듯 풀어야 하느니라.”나는 법주사 문장 월성스님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듣고서인연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정법안 스님의 생각
편집위원 정법안
2022.07.2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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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10월 가을,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이시던 효봉 스님이 표충사 서래각에서 열반하셨는데, 직후 종정의 장례식을 종단장으로 하느냐 문도장으로 하느냐, 하는 것이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당시 총무원장이셨던 청담 스님은 종정의 열반은 반드시 종단장으로 치러야 하기 때문에 서울로 이운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셨습니다.효봉 스님의 문도들은 스님이 평소 거처하신 곳에서 장례를 해야 한다며 한사코 반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그 순간 청담 스님은 묵묵히 문도들을 향해 108배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50여 배가 지나자 그제야 반응이 왔습니다.법
정법안 스님의 생각
편집위원 정법안
2022.07.2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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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스님이 불교TV 무상사초청법회에서 신도들에게 법문을 하셨습니다.“사람들은 말을 나오는 대로 하려고 한다. 그런데 말은 언중유골(言中有骨)이다. 말 중에 뼈가 있다는 말이다. 첫 번째 말은 종자가 되고, 두 번째 말은 싹을 틔우고, 세 번째 말은 열매를 스스로 거둔다. 이처럼 당신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이 엄청나게 무섭다. 그러므로 한마디 말을 하더라도 백 번, 천 번을 씹고 내뱉어야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이를 명심해야 한다.”“사람은 입 안에 도끼를 가지고 태어난다.그 도끼로 남을 해치고 자기도 해친다.”
정법안 스님의 생각
정법안 스님의 생각
2022.07.15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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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스님은 은사 효봉 스님을 오랫동안 시봉하셨습니다. 하루는 큰스님이 거처하시고 있는 염화실 앞을 지나다가 무심코 돌 위에 얹어진 고무신을 보았는데 가만히 보니까 고무신이 왼쪽과 오른쪽이 뒤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바로 해놓았습니다.그런데 다음날도 똑같이 고무신의 오른쪽과 왼쪽이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바로 놓아드렸더니 효봉 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보성아, 그 고무신 그냥 놔둬라.”“큰스님은 오른쪽, 왼쪽도 잘 모르시고 고무신을 신으세요?”“허허. 녀석아 내가 그걸 모르고 신발을 신는 줄 아느냐.”“그럼,
정법안 스님의 생각
편집위원 정법안
2022.07.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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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끝난 뒤 전라도 백양사에 만암 스님이 기거하실 때였습니다. 그 해는 흉년으로 인해 마을사람들이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그것을 알고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올해에는 벼 추수가 끝나는 가을까지는 탁발을 하지 말고 시주도 받지 마라. 그리고 절 안에 있는 곡식들을 마을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라.”백양사 행정을 맡은 원주 스님이 크게 놀랐습니다.“큰스님,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마을에 가서 보니 지난 가을 흉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네. 중생이 굶주리면 우리 절간의 스님들도 굶어야 하네.
정법안 스님의 생각
편집위원 정법안
2022.07.01 0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