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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설가 조용호의 신작 장편 (민음사·2022)을 받아든 것은 지난 여름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두 달간의 레지던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팔월 말이었다. 노트북으로 검색한 신문 기사에서 발간 소식을 읽었고, 부산으로 돌아가면 사서 읽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그가 원주로 책을 보내주겠다고 메신저를 보내왔기에 곧 부산으로 돌아가니 집으로 보내달라고 청했던 거다.그렇게 두껍지는 않은 깔끔한 장정의 책이었다. 몇 장 읽다가 80년대 학생운동의 의문사를 소재로 한 내용이라는 것을 알고는 나는 일단 책장을 덮어
강동수의 독서일기
편집위원 강동수
2022.10.0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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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원주 토지문화관에서 두 달간의 작가 레지던스를 하는 중에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원주로 오면서 읽을 만한 책을 내 방의 서가에서 일별하다가 눈에 띄는 대로 뽑아들고 온 것. 와서는 청탁받은 단편소설을 쓰느라 미처 들추어 보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야 틈틈이 읽기 시작해서 한 대엿새에 걸쳐 1, 2권 두 권을 완독했다.솔직히 말해서 읽어내기엔 그다지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다. 무어 특별한 연애 사건도 없고, 이야기가 스피디하게 진행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지루할 정도로 북독일의 풍경 묘사를
강동수의 독서일기
편집위원 강동수
2022.08.0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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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최근 한 열흘에 걸쳐 무라카미 하루키의 를 민음사 판으로 읽었다. 전3권, 1천15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다들 아시는 대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외국 작가다. 한국 내에서 판매고는 국내 작가를 압도하고 그의 신작이 나오면 국내 출판사들은 판권을 얻으려고 수십 억의 선금을 내걸고 경쟁한다. 일본을 제외한 해외의 다른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한국인의 하루키 사랑은 오래고 끈질겨서 무려 3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그래서 유종호 같은 평론가나 일부 소설가들이 이
강동수의 독서일기
편집위원 강동수
2022.06.14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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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를 완독했다. 이번에 읽은 건 정서웅이 번역한 민음사 번역본이다.사실, 『파우스트』는 이십 대 초에 읽으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그때는 고전 희곡 특유의 그 번다하고 장식적인 문장에 질려 한없이 진도가 느려지다가 무슨 일 탓에 던져 놓은 이후 자연스레(?) 다시 찾아 읽을 생각을 않았더랬다.(사실, 문학적 취향으로는 근대주의자이고 리얼리스트인 나는 이런 장식적 문장으로 가득찬, 낭만주의적 혹은 고전주의적 문장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어쨌거나 환갑이 넘어 이번에 읽기로 한 것은, 그래도
강동수의 독서일기
편집위원 강동수
2022.06.07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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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설가 오선영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후배 소설가인데, 나와는 연배 차도 나고 최근에 내가 작가단체 모임에 잘 나가지 않아서 그런지 술자리를 함께하거나, 깊은 이야기를 나눈 기억은 없다. 계간지에 실린 작품을 한두 편 읽은 기억으로는 깔끔한 문체를 구사하는 작가라는 정도?지난 연말에 집으로 소설집 가 부쳐져 왔지만, 일하던 부산문화재단을 떠나면서 업무 인계 따위로 어수선해서 즉시 읽지는 못했다. 제주도 한 달 살이를 하면서 책을 가져갔지만 놀기에 바빠서 읽지를 못하다가 부산으로 되돌아온 후 펼쳐 들었다.이 작품집을 읽
강동수의 독서일기
편집위원 강동수
2022.06.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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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최근 일주일 새 황석영의 장편소설 와 오선영의 소설집 두 권을 읽었다.황석영 선생이야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우리 시대의 소설 거장이고 대학 시절, 아니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숙했던 작가이다.그의 소설은 아마 거의 빠짐없이 찾아 읽었을 거다.(이건 여담인데, 그는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몇 년 전 부산에서 동료 작가 두엇과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다. 그는 그때 나를 보고 “강형은 인문학적으로 생기셨어”하고 칭찬인지, 디스인지 모를 소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ㅎ)오선영의 소설은 따로 언급하기로 하고 우
강동수의 독서일기
편집위원 강동수
2022.05.24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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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전(古典)’의 사전적 뜻풀이는 ‘예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시대를 초월하여 높이 평가되는 문학 예술작품’이라는데, 나는 ‘고전’이란 단어를 들으면 초등학교 때의 ‘고전 읽기’라는 어구가 자동연상된다.1960년대 말, 70년대 초 이른바 전국 각급학교에서 이른바 ‘고전 읽기’ 열풍(?)이 몰아쳤음은 내 또래 사람들이라면 아마 기억할 듯싶다. 1차분, 2차분, 3차분 해 가면서 초, 중, 고교생용으로 번안된 수십, 수백 권의 책들이 세트로 학교에 배포되고 그걸 학생들에게 읽히라는 거다.기억으로는 자유교양협회인지, 추진회인지 하는 관
강동수의 독서일기
편집위원 강동수
2022.05.17 0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