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철 임대아파트전국회의 부영연대 대표(전 김해시의원)
이영철 임대아파트전국회의 부영연대 대표(전 김해시의원)

부영의 회유

전국 단위 조직체인 부영연대가 출범하자 당시 부영의 분양전환 총괄담당이사한테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만날 수 없고, 대표자들과 함께라면 만나겠다”고 했다.

그렇게 각 단지 대표자들과 함께 그를 만났다. 우리는 “이젠 말로는 안 된다. 분양전환과 관련된 추후 일정, 방식에 대해 시 관계자가 포함된 3자 합의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해 5월 20일 김해시청에서 시 관계자, 부영, 각 임차인대표자들이 만나 분양전환 감정평가방식 및 일정 등을 구체화한 합의서를 작성했다.

이후 해당 절차가 이행되고 분양전환승인신청서가 시에 제출되었는데, 가격산정에서 일부 잘못된 부분이 발견됐다. 자기자금이자율을 높게 적용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보정을 요구했더니 시 담당과장은 “이후 잘못되었다고 판정되면 자식들에게 유언을 해서라도 피해금을 배상하겠다”는 해괴한 말을 했다. 그러면서 그해 10월 2일 부영이 제출한 분양가 9415만 5000원의 분양전환승인신청서를 승인해 버렸다.

우리는 분양 직후인 2009년에 자기자금이자율 부당적용금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분양전환 5년 후인 2013년 10월 1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소송을 제기한 392명은 부영으로부터 부당적용금을 돌려받았다. 또 이 소송 제기 이후 분양전환 된 단지들은 법령이 정한 이자율을 적용받았다.

당시 큰소리를 쳤던 시의 담당과장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고 조용히 정년을 맞았다.

나의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 후부터는 나의 고난사가 시작됐다. 정작 우선분양전환권자였던 나는 부영의 거부로 인해 분양을 받지 못했다. 부영연대 결성 이후 각종 고소고발로 인한 임대보증금 손배가압류가 그 이유였다.

이 사실을 안 입주민들이 임대보증금 가압류 금액을 모금하고 분양계약체결을 요구했지만 부영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나는 부영연대 대표였던 나에 대한 보복을 넘어 더 큰 부분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그렇게 했으리라 생각한다. 분양전환에 따라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성되면 아파트관리권 인수인계과정에서 여러 가지가 밝혀질 것인데, 이런 점 때문에 나의 입주자대표 출마자격(소유자)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 그랬으리란 것이다.

나는 입주민들이 모금한 돈을 돌려드린 뒤 자력으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다. 부영은 항소했다.

그 무렵 서울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부영의 법무총괄담당 임원이라고 했다. 그는 만나자고 했다. 그가 “부산이나 인근의 호텔 같은 곳에서 만나자”고 해서 “나는 그런 곳은 알지 못하니 김해서부경찰서 근처 아무 곳이나 수소문해서 장소와 시간을 알려 달라”고 말했다.

우리는 당시 장유대청계곡길 옆 ‘첼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2009년 11월 초 였다. 그는 대뜸 “선거에도 출마하셨더군요”라고 말했다. 나는 “분양전환 때문에 아무것도 모른 채 등 떠밀려 임차인대표회의 회장을 맡았는데 시청에 들어가 행정을 상대해보니 ‘이래서 철밥통, 탁상행정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시의원이 되면 각종 자료들을 다 받아볼 수 있다 싶어서 마음에도 없는 선거(마선거구 김해시의원 보궐선거)에 나서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출마한 정당(당시 진보신당추진위원회)의 당 대표인 노회찬 국회의원이 학교선배”라고 말했다. 나는 기회다 싶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시군요. 그럼 노회찬 의원님을 잘 아시겠네요. 저는 그분을 너무나 존경하고 대단한 분이라 생각합니다. 능력이 출중한 분이라서 맘만 먹으면 기득권 정당에 가서 유력정치인으로 탄탄대로를 걷고도 남을 건데 자신의 영달을 위한 평탄한 길을 버리고 이렇게 소신 있게 오랫동안 민생 정치를 하시니 대단한 일입니다. 존경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에게도 온갖 유혹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걸 다 뿌리치고 고난의 길을 가시니 대단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회유나 매수 같은 패악은 꼭 사라져야 합니다. 나는 그런 분들과 함께하기 위해 진보신당에 가입했고, 특히 부영 분양전환 문제 해결을 위해 출마했습니다.”

그는 낯빛이 바뀌더니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분양을 해주겠는데, 회장님에게 보고하려면 명분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결론은 ‘부영의 횡포 및 이에 대한 대응, 분양전환 추진 방법 등을 기록해온 ’다음블로그(이영철의 희망세상)‘를 폐쇄하고 부영연대 대표를 그만두는 것은 물론 부영 비방에 관한 일체의 글 게시 및 활동을 멈춘다’는 확약서를 작성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지쳐서 더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미해결 사안 세 가지(특별수선충당금 미적립금 적립 및 인계-당시 전국적으로 적립해야 할 금액이 약 300억원이었다. 부영9차는 약 3억원), 분양전환에 따른 하자 보수, 분양전환가격에 잘못 산정된 자기자금이자율 차액(세대 당 약 45만원) 지급 등만 해결해 주면 하라고 해도 할 생각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는 부영의 행태를 봤을 때 쉽게 수용할 사안이 아니었다. 그의 대답도 '역시나'였다.

내가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었던 유혹을 뿌리치고 그렇게 한 이유는 미해결 단지들 때문이었다. 당시 김해시에서는 24개 단지 중 6개 단지(장유6,8,9차, 삼계1,2,3차)만 분양전환이 완료되었고, 나머지 18개 단지는 분양전환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부영이 이들 단지들을 대상으로 부조리한 횡포를 부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유혹에 흔들려선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은 것이었다.

부영연대의 김해시청 앞 기자회견(사진: 부영연대 제공).
부영연대의 김해시청 앞 기자회견(사진: 부영연대 제공).

부영, 본색을 드러내다

아니나 다를까 부영은 나머지 단지에 대한 분양전환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았다. 2011년경 아파트가격이 폭등하자 또 마음대로 분양전환 작업을 진행했다. 즉, 주변시세가 올랐기 때문에 감정평가금액을 높게 책정해 분양가를 높이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부영은 단지규모가 가장 큰 장유 15,16,17차를 주된 타깃으로 잡았고, 소위 ‘분양가 자율화단지’라며 2011년 2월 22일 김해시청에 1억 2500만원에 분양하겠다는 분양전환승인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더니 5월 31일에는 1억 5300만원으로 가격을 더 올려 신청을 했다.

화가 나 승인권자인 김해시장(김맹곤 시장)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대표자들과 시장실을 방문했지만, 서울 출장 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5박6일 동안 철야로 시청 본관 정문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가 2011년 2월 28일 가까스로 면담을 가졌다. 하지만 그는 “분양가 자율화단지가 맞는다”는 말만 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임대주택법이 2008년 6월 22일 전부개정돼 소위 ‘분양가 자율화단지’란 게 없어졌는데도 그는 막무가내였다. 야권시장(김맹곤 시장은 민주당 소속이었다.)이었는데도 그랬다.

우리는 보다 강력하게 분양전환승인처분 중단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부영연대 청주’에서 제기한 분양가 자율화 단지 관련 소송이 대법원에 계류 중인 것을 계기로, 우리는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탄원서도 제출하며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2011년 7월 14일 대법원은 “자율화 단지란 없고, 2008년 전부개정 된 법에 따라 법령에 정한 가격산정 절차에 의해 분양전환가격을 산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로 인해 당시 시에 접수되었던 부영의 ‘분양가 자율화단지’에 의한 분양가 승인신청서는 반려됐다. 이후 부영은 1억 1500만원~1억 1800만원대의 분양전환승인신청서를 제출했고 승인처분이 되었다. 요컨대 무려 3500만원~3800만원에 이르는 각 세대별 분양가 피해를 줄이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에 더해 건설원가소송을 제기했다. 건설원가는 분양전환가격산정의 요소인데 부영은 이를 세대 당 1000만원~1400만원 부풀린 상태였다. 따라서 이 소송에서 승소하면 결과적으로 분양가를 더 낮출 수 있었다.

우리는 소송인단 구성에 나섰고, 장유지역 대부분의 단지에서 소송인단을 구성할 수 있었다. 최초 분양전환 된 장유6,8,9차의 첫 소송제기(2012. 7. 23.)에 이어 나머지 단지들도 2013년 11월부터 순차적으로 창원지법에 소장을 접수시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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