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우 대표/발행인(전 부산일보 이사)
이광우 대표/발행인(전 부산일보 이사)

지난달 27일 강원도 고성군 제진역에서 행사가 하나 열렸다. 통일부와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동해북부선 추진 결정 기념식'이었다. 남북종단철도(TKR, Trans-Korean Railways) 연결을 염두에 둔 행사였다.

이 행사를 지켜보고 있자니 20년 전 부산일보 기자 시절에 밀레니엄 신년 특집기사 취재차 시베리아횡단열차(TSR, Trans-Siberian Railways)를 타고 시베리아 일대를 답사한 기억이 났다.  

■철(鐵)의 실크로드를 가다

남북종단철도 연결 구상이 처음 나온 건 아니다.

지난 2000년 8월 16일, 김대중 대통령(이하 호칭 생략)은 광복회 간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9월에 경의선 연결 공사가 시작되는데, 내년 가을이면 끝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유럽, 아시아, 태평양을 연결하는 ‘철(鐵)의 실크로드’ 시대가 열리게 된다.”

김대중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은 평양 정상회담에서 경의선 연결 문제에 대해 합의를 본 터였다.

그런데, 김정일이 급서하는 바람에 국내외의 상황이 급변했고, 이 문제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쨌든, 김대중 정부 때는 ‘철의 실크로드’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컸다. ‘철의 실크로드’란 남북종단철도와 중국횡단철도(TCR, Trans-China Railways),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연결시킨 ‘꿈의 노선’을 말한다.

지난 2007년의 남북종단철도 연결 구간 시험운행 모습(사진: KBS 화면 캡처).
지난 2007년의 남북종단철도 연결 구간 시험운행 모습(사진: KBS 화면 캡처).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 2000년에 부산일보와 매일신문 광주일보 강원일보 대전일보 제주신문 등 6개 신문사(일명 춘추사)는 공동으로 <철(鐵)의 실크로드를 가다>라는 제목의 밀레니엄 신년 특집을 마련했다.

내가 제안한 것으로, 기획 취지는 다음과 같다.

“남북한의 경의선 연결 사업은 한반도의 물류 환경 개선에 기여함은 물론, 대륙과 해양을 동시에 지향해야 할 반도국가의 국민이면서도 분단 이후 대륙의 존재를 잊고 살아온 우리에게 웅혼한 대륙적 기상을 일깨워줄 것으로 기대된다.”

나는 제안자로서 직접 취재를 해야 했다. 사진부에서는 강원태 기자가 해병대 출신답게 자원을 했다.

취재팀은 1, 2진으로 구성됐다. 1진은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중국에서 러시아까지, 2진은 중국횡단열차를 타고 중국에서 터키까지 가기로 했다. 나는 1진이었다. (부산일보 등의 2001년 신년특집 ‘철의 실크로드를 가다’ 시리즈 참조)

나와 강 기자는 영하 40도를 오르내린 12월 시베리아의 무서운 추위와 뼛속을 파고드는 막막함과 죽음에 대한 공포 속에서 27박 28일 동안 개고생을 해야 했다. 돌아와 보니 몸무게가 8㎏ 빠져 있었다.

물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이 되면 늘 시베리아를 떠올리게 만드는 특이하고 멋진 기억들도 적지 않다. 동화 속 궁전 같았던 크렘린궁, 철로변의 자작나무 행렬, 신령스러운 바이칼호, 한 데카브리스트(황제에게 반기를 들었던 혁명가)의 고독한 책상, 1.8㎞ 길이의 장대한 화물열차 등등.

■시작부터 어그러진 취재 일정

해외취재란 게 간혹 그런 경우가 있긴 한데, 이 취재는 처음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제일 먼저 중국 지린성의 변방인 훈춘(琿春)엘 가야 했다. 훈춘은 북한, 중국, 러시아 세 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으로, 삼각 교역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걸 취재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훈춘의 폭설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하는 수 없이 옌지(延吉)에서 1박을 하며 일정을 점검했는데, 어이없는 상황이 전개됐다.

모스크바까지 동행하기로 한 재중동포 러시아어 통역 겸 안내원은 러시아어를 할 줄 모르는 건 고사하고, 기차 대신 비행기를 이용하자, 일정을 열흘로 줄이자, 정 안 되면 하얼빈까지만 동행하겠다, 고 엉뚱한 소리를 해댔다. 그러면서 수고비는 턱없이 높게 불렀고, 은근히 테러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옌지에서 힘깨나 쓰는 집안 출신으로, 망나니 수준의 건달에 가까웠다. 나에게 “한국에서 좀 까부느냐(사회적으로 힘깨나 쓴다는 뜻의 옌지 말)”고 묻기도 했다.

다행히 옌지에는 어머니와 일제 때 헤어진 오빠 즉, 외삼촌이 계셨다. 외삼촌은 지린성(吉林省)의 공산당 인사부장 출신이어서 힘이 무척 셌다. 그는 외삼촌 얘기가 나오고 외사촌 누나가 연락을 받고 달려오자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

우리는 급히 하얼빈(哈爾賓)까지 안내할 사람을 다시 찾아낸 다음, 옌지에서 일반 쾌속열차 보쾌(普快)를 타고 하얼빈으로 갔다. 11시간 걸렸다. 하얼빈에서는 미리 예매해 둔 시베리아횡단열차의 국제열차표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하얼빈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국제열차표를 구해놓기로 한 사람은 연락 두절이었다. 중국 정부에서 외국 기자와의 접촉을 금지했기 때문이란 말만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다. 중국 정부는 외국 기자와 교수들을 꺼린다고 하는데, 그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현장에서는 국제열차표를 구할 수가 없어서, 하얼빈에서 1박을 해야 했다. 그리고 창춘(長春)에서 비행기로 베이징까지 간 뒤 역시 비행기로 모스크바까지 간 다음, 당초 계획의 역순으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베이징까지 오는 일정으로 변경을 해야 했다. 국내에서 일정을 조율했던 모스크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전화를 걸어 변경된 내용을 알렸다.

'세계 3대 축제'인 하얼빈의 빙등제 모습. 초대형 얼음조각 작품들이 전시된다(사진: Pixabay).
'세계 3대 축제'인 하얼빈의 빙등제 모습. 초대형 얼음조각 작품들이 전시된다(사진: Pixabay).

세상만사 ‘새옹지마 전화위복(塞翁之馬 轉禍爲福)’이고 ‘일득일실(一得一失)’인 것인가. 그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서도 뜻하지 않은 소득이 또한 있었다.

하얼빈까지 동행한 통역 겸 안내원은 외사촌 동생의 친구(이하 옌지 친구)였다. 옌지 친구의 한족(漢族) 대학 동기가 마침 하얼빈에 공무상 파견 나와 있었는데, 집안 어른이 정치적으로 대단한 거물이었다. 자신도 하얼빈에서는 무시 못할 위치에 있었다.

옌지 친구의 동기는 뭘 도와드리면 되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오 히로부미를 저격한 빈장(濱江)역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흔쾌히 부탁을 받아들였고, 촬영이 금지된 곳이었지만 빈장역의 저격 현장을 사진에 담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곳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신문에 그 사진이 실리자 어떻게 된 일이냐며 놀라워했다.

옌지 친구의 동기는 우리를 자신의 관사로 초대해서 저녁을 대접했다. 중국식 배달요리였는데, 양과 종류가 엄청났다. 이곳에서는 손님이 먹든 안 먹든 양껏 차려서 내놓는 걸 예의라 여긴다고 들었다.

옌지 친구의 동기는 식사를 하면서 하얼빈이 포함된 둥베이(東北) 3성(지린성 헤이룽장성 랴오닝성) 자랑을 많이 했다. 대략 이러하다.

"둥베이 3성에서는 항일 영웅이 많이 났다. 하얼빈의 명소인 ‘자오린공원’은 항일 명장 리 자오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일제 때는 한족과 조선인들이 합심해서 일본인들을 때려잡았다."

중국 최고의 지략가라 불린 린뱌오
중국 최고의 지략가라 불린 린뱌오

"중국의 해방전쟁 때 둥베이 3성은 인민해방군의 주요 거점이었다. 인민해방군의 둥베이야전군 사령관 린뱌오(林彪, 임표)는 특히 전략적으로 이곳을 중시했다. 둥베이 사람들은 머리가 좋고 호방하며 당파의식이 거의 없었는데, 인민해방군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는 예로부터 공업 중심지였다. 지금도 하얼빈에는 국가경제의 근간이 되는 국영기업이 많이 있다. 탱크와 헬리콥터 같은 군수물자도 여기에서 생산된다. 수력발전소가 많아서 전기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는데, LG산전이 이곳에 터를 잡은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노찾사의 '광야에서'와 이육사의 '광야'

저녁을 먹고 나서 옌지 친구와 우리는 소파가 여기저기 찢어져 있는 허름한 노래방으로 가 노래를 불렀다. 옌지 친구는 러시아식 춤을 추기도 했다.

나는 노찾사의 ‘광야에서’를 불렀다.

(…) 해 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노래가 끝나자 옌지 친구는 벅차하면서 울먹였다. 화면에서는 만주벌판이 흐르고 있었다. 문득 일제강점기의 시인 이육사의 시 ‘광야’ 생각이 났다.

“(…)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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